IHO S-101 전자해도(ENC) 완벽 가이드: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차세대 해도 표준
배를 타고 먼 바다를 항해할 때, 선장은 무엇을 보고 길을 찾을까요? 과거에는 종이 해도를 펼쳐놓고 나침반과 함께 사용했지만, 요즘은 디지털 시대답게 전자해도(ENC, Electronic Navigational Chart)라는 것을 사용합니다.
오늘 소개할 S-101은 바로 이 전자해도의 “차세대 표준”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S-100이라는 해양 데이터의 큰 틀에 대해 다뤘는데, S-101은 그 S-100 위에서 만들어진 가장 핵심적인 제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잠깐, 전자해도가 뭔가요?
전자해도는 쉽게 말해 “디지털 바다 지도”입니다. 단순히 종이 해도를 스캔한 이미지가 아니라, 수심, 암초 위치, 등대, 항로, 해류 정보 등이 모두 데이터로 저장되어 있어서 컴퓨터가 자동으로 분석하고 경고를 줄 수 있습니다.
배에 탑재된 ECDIS(전자해도표시정보시스템)라는 장비가 이 전자해도를 읽어서 화면에 보여주고, “이 앞에 암초가 있습니다!” 같은 알람도 자동으로 띄워줍니다.
왜 S-101이 필요할까요? (기존 S-57의 한계)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선박이 사용하는 전자해도는 S-57이라는 표준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1990년대에 만들어진 이 표준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지만, 30년 가까이 사용하다 보니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S-57의 문제점
제가 비유를 하나 들어볼게요. S-57은 마치 “올인원 프린터 복합기” 같습니다. 프린터, 스캐너, 팩스가 하나로 합쳐져 있어서 편리하긴 한데, 프린터만 고장 나도 전체를 서비스센터에 맡겨야 하고, 스캐너 해상도를 올리고 싶어도 불가능합니다. 모든 게 하나로 묶여 있으니까요.
S-57도 마찬가지입니다:
- 데이터(지도 내용), 데이터 정의(이건 등대야, 이건 암초야), 표현 방식(등대는 노란색으로 그려)이 한 덩어리로 묶여 있습니다
- 새로운 정보(예: 해상풍력발전소)를 추가하려면 표준 전체를 손봐야 합니다
- 업데이트가 느리고, 시스템 간 호환성도 떨어집니다
S-101의 해결책: “레고 블록” 방식
S-101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분리했습니다. 마치 레고 블록처럼요.
- 콘텐츠(데이터): 실제 해도 정보 (수심, 위치 등)
- 피처 카탈로그: “이런 종류의 정보가 있어요”라고 정의하는 목록
- 포트레이얼 카탈로그: “이건 이렇게 화면에 그려요”라고 정의하는 표현 규칙
이렇게 분리하면 뭐가 좋을까요? 예를 들어 해상에 새로운 유형의 시설물(예: 해상 드론 정류장)이 생겼다고 해봅시다. S-57에서는 표준 전체를 개정해야 했지만, S-101에서는 피처 카탈로그에 “드론 정류장”만 추가하고, 포트레이얼 카탈로그에 “드론 아이콘으로 표시”만 추가하면 됩니다.
이걸 전문 용어로 “플러그 앤 플레이(Plug and Play)” 업데이트라고 합니다. USB처럼 꽂기만 하면 바로 작동하는 방식이죠.
DCEG: 데이터를 만드는 “레시피 북”
S-101 데이터를 만들려면 규칙을 따라야 하는데, 이 규칙이 담긴 문서가 바로 DCEG(Data Classification and Encoding Guide)입니다. 한국어로 하면 “데이터 분류 및 인코딩 가이드”쯤 되겠네요.
전 세계의 수로 기관(한국으로 치면 국립해양조사원)이 이 DCEG를 보고 똑같은 방식으로 전자해도를 만들기 때문에, 한국 해역의 해도든 미국 해역의 해도든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집니다. 덕분에 외국 선박이 한국 바다에 와도 문제없이 해도를 사용할 수 있죠.
복합 속성: 정보를 “폴더”에 정리하기
S-101에서 새롭게 도입된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복합 속성(Complex Attribute)입니다.
기존 방식의 문제
S-57에서는 등대 하나를 설명하려면 이렇게 했습니다:
- 이름: 팔미도등대
- 영문이름: Palmido Lighthouse
- 설치일: 1903-06-01
정보가 따로따로 흩어져 있어서 “이름”과 관련된 정보를 한꺼번에 관리하기 어려웠습니다.
S-101의 해결책: 폴더 구조
S-101에서는 관련 있는 정보를 하나의 “폴더”에 담습니다:
feature name (피처 이름) 폴더:
- name: 팔미도등대
- language: 한국어
- name usage: 기본 표시용
fixed date range (고정 날짜 범위) 폴더:
- date start: 1903-06-01
- date end: (없음 - 현재까지 운영 중)
이렇게 구조화하면 컴퓨터가 정보를 훨씬 쉽게 처리할 수 있고, 나중에 새로운 언어(예: 일본어 이름)를 추가하기도 편합니다.
시스템 속성: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정보
전자해도에는 항해사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지만 시스템 작동에 꼭 필요한 정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 interoperability identifier: 다른 시스템과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쓰는 고유 번호
- display priority: 여러 정보가 겹칠 때 뭘 먼저 보여줄지 결정하는 우선순위
- file locator: 관련 파일이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 알려주는 경로
이런 정보는 항해사가 화면에서 특정 대상을 클릭했을 때 나오는 “선택 보고서(Pick Report)“에서 제외됩니다. 기술적인 정보까지 다 보여주면 오히려 혼란스럽기 때문이죠.
정보 심볼: 추가 정보가 있다는 신호
ECDIS 화면에서 가끔 자홍색(마젠타) “i” 심볼을 본 적 있으신가요? 이건 “여기에 추가 정보가 있어요”라는 뜻입니다.
S-101에서는 특정 대상에 대해 텍스트 설명이나 그림 파일을 첨부할 수 있는데, 이런 추가 정보가 있으면 ECDIS가 자동으로 “i” 심볼을 표시합니다. 항해사가 이 심볼을 클릭하면 추가 정보를 볼 수 있죠.
단, 규칙이 있습니다. 다른 속성으로 표현 가능한 정보는 절대 이 방식을 쓰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화면에 “i” 심볼이 너무 많아지면 정작 중요한 정보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환 세트: 해도 데이터의 “택배 상자”
S-101 데이터는 그냥 파일 하나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 교환 세트(Exchange Set)라는 정해진 형태의 패키지로 전달됩니다.
교환 세트에 들어있는 것들
- ENC 데이터셋: 실제 해도 데이터 파일들
- CATALOG.XML: 이 패키지에 뭐가 들어있는지 설명하는 목차 파일
- 지원 파일들: 추가 텍스트 설명(.TXT)이나 그림(.TIF) 파일
지원 파일 규칙
지원 파일에는 까다로운 규칙이 있습니다:
- 텍스트 파일: UTF-8 인코딩만 허용. HTML이나 다른 마크업 절대 금지
- 그림 파일: TIFF 6.0 형식만 허용. JPG나 PNG는 안 됩니다
왜 이렇게 엄격할까요? 배의 ECDIS는 인터넷 연결이 없는 상태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만약 해도 파일에 악성 스크립트가 포함된 HTML이 섞여 들어가면 큰일 나겠죠. 그래서 가장 단순하고 안전한 형식만 허용하는 겁니다.
품질 검증: 실수를 잡아내는 안전망
전자해도는 인명과 직결되는 데이터입니다. 수심이 잘못 입력되면 배가 암초에 부딪힐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S-101은 철저한 품질 검증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검증 표준
- S-158:100: S-100 프레임워크 전체에 적용되는 범용 검증 규칙
- S-158:101: S-101 전자해도에만 적용되는 특수 검증 규칙
데이터 제작자는 이 검증 절차를 통과해야만 전자해도를 배포할 수 있습니다.
상호 운용성 등급
S-101 버전 2.0.0은 Category 4 등급을 받았습니다. 이건 국제해사기구(IMO)의 요구사항을 완전히 충족하고, 다른 S-100 기반 제품들(수심 표면, 해류 정보 등)과 완벽하게 호환된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이해하는 비유: 건축 설계 도면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하나의 비유로 정리해볼게요.
S-101 전자해도를 “모듈형 건축 설계 도면”이라고 생각해봅시다.
| 구분 | S-57 (구형) | S-101 (신형) |
|---|---|---|
| 구조 | 모든 정보가 한 장에 인쇄됨 | 레이어별로 분리된 디지털 파일 |
| 수정 | 전체 도면 재작성 필요 | 해당 레이어만 교체 |
| 확장 | 새 양식 승인에 수년 소요 | 플러그 앤 플레이로 즉시 추가 |
| 정보 구조 | 평면적 나열 | 폴더 형태로 구조화 |
| 시스템 정보 | 전부 노출 | 필요한 것만 선별 표시 |
예를 들어, 건물 도면에서 “1층 화장실 타일 색상”을 바꾸고 싶다면:
- S-57 방식: 1층 도면 전체를 새로 그려야 함
- S-101 방식: “마감재” 레이어에서 해당 부분만 수정
마무리
S-101은 단순히 해도 파일 형식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30년간 굳어진 해양 데이터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현대화하는 작업입니다.
핵심을 정리하면:
- 분리 가능한 구조: 데이터, 정의, 표현을 독립적으로 업데이트
- 복합 속성: 관련 정보를 논리적으로 묶어서 관리
- 엄격한 품질 관리: 국제 표준에 따른 검증 필수
- 미래 대비 설계: 새로운 해양 정보 유형에 유연하게 대응
앞으로 S-101 기반 전자해도가 전 세계적으로 도입되면, 선박 항해는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참고 자료 다운로드
이 글에서 참조한 IHO 공식 문서를 아래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
S-101 ENC Product Specification Ed 2.0.0 (전자해도 제품 사양서)
-
S-101 Annex A DCEG Ed 2.0.0 (데이터 분류 및 인코딩 가이드)
IHO 표준 AI 어시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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